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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정신건강의 날 기념 4인사색 <정신건강과 우리>
담당부서 강원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전화번호 0332511970 조회수 278
첨부파일(1) 첨부파일받기 알아야방법도보인다_유기택시인.pdf
첨부파일(2) 첨부파일받기 어떻게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_하창수.pdf
내용 10월 10일 정신건강의 날을 맞이하여 정신건강에 대한 강원도민의 관심을 높이고, 정신장애인 편견해소 및 차별방지 등 정신건강 인식개선을 통해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제고를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도내 문인 4인의 <정신건강과 우리>라는 주제로 강원일보, 강원도민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1.「알아야 방법도 보인다」 유기택 시인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자, 좋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누구나 그러고 싶다. 헌법은 그것을 국가 불가침인 개인의 기본적 인권임을 확인하고 한 발 더 나아가 국가가 이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할 의무를 선언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분명 건강한 행복을 추구할 권리이고, 국가의 구성원인 모든 개인이 심정적으로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런 행복에 이를 것인가? 모름지기 행복은 육체와 정신의 평화로운 균형에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것이다. 언뜻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문제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국가의 사회 관련 시스템과 사회라는 집단 인식과 개인 간의 상호 인식이 개인의 관계에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더구나 상대적 약자라고 할 장애를 가진 구성원에게는 그런 외적 요인이 더 직접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국가와 사회와 개인 간 인식의 상호 보완 기능이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말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지극히 당연하게 행해져야 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 사회와 국가 시스템과 개인이 개인을 대하는 인식은 그런가? 육체적 장애에 관하여는 아직 충분하진 않지만 여러 가지 사회 안전망을 확보해 가고 있고 발전하고 있는 양상이 보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장애에 관해서는 당사자나 보호자가 경시하거나 쉬쉬하는 탓도 있겠지만 사회적 보호 차원에서의 인식이 출발에서부터 조금 늦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18개 시·군 단위의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설치되고 개인의 정신장애에 따른 위기 해결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개개인에게는 아직은 충분치 않다고 여겨질지라도 이런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이를 더 발전시켜야 하고, 우리가 바라보는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이나 인식도 빠르게 바꾸어 막을 수 있는, 개인의 불행을 막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정확하게 알아야 해결 방법도 보인다는 말이다.
정신장애는 보통 뇌 기능의 이상으로 생기는 질환으로, 크게 정신증과 신경증으로 나뉜다고 한다. 정신증은 사고 및 감각의 왜곡을 동반, 이해할 수 없는 사고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자타의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한다. 조현증, 조울증, 우울증 등이 그렇다. 신경증은, 사고는 정상이나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전환장애, 신체화장애, 강박장애 등으로 나뉘며 그 밖의 정신장애로는 인격장애, 지적장애, 자폐증 등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만 보아도 혹시 나도 이 중 어느 하나쯤의 증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단순한 기우일까? 사실, 복잡다단한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누구든지, 크건 작건 정신적 문제를 겪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정신으로 견디고, 정신으로 살아내야 하는 사람의 몫이 커졌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런지, 정신적 장애에 대하여 본인에 관련한 이야기를 매우 꺼리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감기를 앓는 병증은 쉽게 호소하면서도, 정신장애의 고통은 쉽게 호소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정신장애에 관한 잘못된 선입견이나 부정확하고 부족한 이해의 탓으로 자신이 부당한 사회적 불이익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여기서 우리가 나누어 감당해야 할 몫이 분명해진다. 정신장애를 정확히 이해하고 공감하여 서로 도움이 되자는 말이다. 정신장애도 ‘마음으로 앓는 감기’쯤으로 인식하자는 것이다.
정신장애 대부분은 치유할 수 있고 적어도 완치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여러 처치를 통해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얼마든지 가능한 질병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더는 감추기만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알게 모르게 이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과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말이 우리 중 누구라도 여기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는 방증은 아닐지.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어떻게,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하창수 소설가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애를 쓴다고 쓰는데 진척이 영 없을 때, 자신의 삶이 하루하루 겨우겨우 살아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밀려들 때 - 인간은 두 가지 상반된 태도 중 하나를 취한다. 그 하나는 자포자기(自暴自棄)고, 다른 하나는 자기포기(自己抛棄)다. 자포자기와 자기포기는 ‘포기한다’는 점에서만 동일할 뿐, 포기의 양상이나 방법, 포기의 대상이 완전히 다르며, 결정적으로 그 결과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가진다.

자포자기는 영어로 self-abandonment. 포기를 뜻하는 abandon은 절망을 뜻하는 despair와 동의어다. 절망은 자포자기하게 만드는 이유인 동시에 자포자기한 뒤에 일어나는 결과이기도 하다. 즉, 뭔가를 하다가 절망적인 감정을 가지게 됨으로서 스스로 포기하게 되고, 그렇게 포기하고 난 뒤 절망감에 허우적이며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자포자기가 곧 절망이다.

자기포기는 영어로 self-renunciation이다. renunciation은 사적인 욕심을 버린 무사(無私)와 무욕(無慾)의 상태를 뜻하며, 자신이 그동안 지켜왔던 신념이나 생활방식 일체를 포기한다는 선언을 의미한다. 이 말은 금욕(禁慾)을 뜻하기도 한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애를 쓰지만 결과가 난망할 때, 자신의 삶이 남루하고 초라하고 가치라곤 찾아볼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 그러한 자신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자기포기다. 자기포기는 새로운 탄생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필자가 ‘자기포기’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절친한 친구 H의 <자기포기>란 제목의 책에서였다. 그는 감리교 목사지만, 범종교적인 사람이다. 석가탄신일이 되면 알고 지내는 스님의 절에 난초 화분을 보내고, 크리스마스에는 그 스님으로부터 성찬용 포도주를 받는, 자신만의 신을 ‘포기’하고 우주에 편재(遍在)하는 진정한 신을 ‘받아들인’ 진정한 종교인이라는 게 그를 평가하는 내 안목이다. <자기포기>라는 H의 책에는 우화처럼 읽히는 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어느 수도자가 오랜 수련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의 얼굴은 광채로 빛났고 몸에서는 여유가 향기처럼 퍼져 나왔다. 눈은 호수처럼 맑았다. 사람들은 깨달은 자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수련을 통해 참 많은 걸 얻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에게 “당신은 무엇을 얻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수도자는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저는 얻은 게 없습니다. 오히려 잃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걸 잃었지요.” 그가 달라져 보인 것은 뭔가를 얻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뭔가를, 아주 많은 것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얘기였다.

주의를 소홀히 해 잃어버릴 수도 있고, 누군가 훔쳐가서 잃을 수도 있다. 이때 우리는 큰일이 난 듯 생각한다. 화를 내거나, 억울해 한다. 잃어버린 그것을 다시 채우고 나면, 이젠, 잃을까봐 노심초사한다. 가진 것을 스스로 내버릴 때도 역시 잃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된다. 하지만 이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화나 억울이 아니라 평온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채우려 안달하지 않는다. ‘자발적 잃음’은 상실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우리에게 안겨준다. ‘자기포기’란 이런 것이다. 무엇을 포기하는가에 따라, 어떻게 포기하는가에 따라, 포기는 기적을 선사하기도 하는 신비로운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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